“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동쪽은 조용히 나를 껴안는다 – 제주 사려니와 비자림 이야기”

✅ [제주 동부 편]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유독 차선이 곧고,
양옆엔 나무가 나란히 서 있어요.

잠깐 정차한 그 길 옆에
숲길 입구 하나가 보이죠.
표지판도 작고, 사람도 별로 없고,
심지어 이름도 조용히 말하는 듯한 사려니.

붉은오름 입구에서 들어가 걷다 보면
이 길이 무슨 ‘명상길’인지 ‘치유길’인지
굳이 단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숨이 느려집니다.

나무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느낌이랄까.
바람이 좀 더 부드럽게 옷깃을 스치고,
흙은 생각보다 말랑해요.

걷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

비자림은
숲이라기보단 하나의 ‘공기층’ 같아요.
공기가 다르고, 소리도 다르고,
심지어 빛도 나무 위로만 들어와요.

천천히 걷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조용해지고,
나무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너 되게 오래 있었구나” 하고 속삭이게 돼요.

그냥,
걸으라고도 안 하고,
앉으라고도 안 하고,
‘이걸 하세요’ 같은 말은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선 하고 싶어져요.
앉아있고 싶고,
그늘에 눕고 싶고,
나무한테 말 걸고 싶어져요.

왜냐면,
이 숲은 기다릴 줄 알거든요.

누가 나한테 괜찮다고 해주는 것도 좋지만
동쪽의 숲은 말해요.

**“네가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자체로 괜찮다”**고.

그 말이
누군가한테는 위로보다 더 깊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이 숲에서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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